대순진리역사
< 개 요 >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1969년 우당(牛堂) 박한경(朴漢慶)이 창시한 종교로, 구한말의 종교가인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가르침을 따르는 증산 계통의 종교 중 하나이며, 그 중 가장 교세가 크다.
< 규 모 >
강증산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교파들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다른 증산계통 교단들이 분파는 많으나 대부분 교세가 미미한 상황과 대비된다.
한때 신도수 400만을 주장했다. 이는 과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영생교, 천부교의 최대 신도수를 합친 것보다 크고 370만 명의 신도 수를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리고 인구주택총조사 종교항목에서 명시된 8개 항목 중 하나를 차지한다.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통계는 10년마다 실시하는데, 1995년부터 대순진리회가 정식항목으로 들어갔다.
2005년에는 대순진리회 대신 '증산교'로 되어있는데 '증산교'라고 하면 증산계열 종교를 모두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심지어 교명이 '증산교'인 교단까지 있다. 결국 증산교, 증산도, 대순진리회 신도가 모두 이쪽으로 잡히는 문제점이 있었고, 반대로 대순진리회 신자들이 증산교가 아닌 '기타'를 고르는 일도 왕왕 있었기에 당시 통계가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인지 2015년에는 '증산교' 대신 '대순진리회' 항목이 부활했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종교통계가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한 정확한 신도수 파악은 어렵다. 대순진리회 측에서는 현재 신도수가 꾸준히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인구조사에서 나타난 신자 수는 1995년 62,056명, 2005년 34,550명(증산교), 2015년 41,176명으로 나타났다.
< 교리 >
태극도에서 갈라졌으므로 교리는 당연히 태극도와 대동소이하다. 기본적으로 의례체계나 교리는 태극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전으로는 전경(1974 년 초판)을 사용하는데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이 수집한 기록들을 토대로 편찬, 장병길 교수 그리고 박한경이 감수하였다. 보통 대순진리회 사람들은 전경을 읽는다.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九天上帝),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이며 강일순을 의미한다.
교리개요(敎理槪要)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造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를 종지(宗旨)로 하여 성, 경, 신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 안신(安身)의 이율령으로 수행의 훈전을 삼아 윤리 도덕을 숭상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 구제창생(救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을 이룩한다.
종지(宗旨)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
신조(信條)
사강령(四綱領) - 안심(安心), 안신(安身), 경천(敬天), 수도(修道)
삼요체(三要諦) - 성(誠), 경(敬), 신(信)
목적(目的)
무자기(無自欺) 정신개벽(精神開闢)
지상신선 실현(地上神仙實現) 인간개조(人間改造)
지상천국 건설(地上天國建設) 세계개벽(世界開闢)
수도(修道)
공부(工夫), 수련(修鍊), 평일기도(平日祈禱), 주일기도(主日祈禱)
훈회(訓誨)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3. 척(慼)을 짓지 말라.
4. 은혜(恩惠)를 저버리지 말라.
5. 남을 잘 되게 하라.
수칙(守則)
국법(國法)을 준수(遵守)하며 사회도덕(社會道德)을 준행(遵行)하여 국리민복(國利民福)에 기여(寄與)하여야 함.
2.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음양합덕(陰陽合德)ㆍ만유조화(萬有造化) 차제(次第) 도덕(道德)의 근원(根源)이라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나라에 충성(忠誠)하며, 부부(夫婦) 화목(和睦)하여 평화(平和)로운 가정(家庭)을 이룰 것이며, 존장(尊丈)을 경례(敬禮)로써 섬기고 수하(手下)를 애휼(愛恤) 지도(指導)하고, 친우(親友) 간(間)에 신의(信義)로써 할 것.
3. 무자기(無自欺)는 도인(道人)의 옥조(玉條)니, 양심(良心)을 속임과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언행(言行)과 비리괴려(非理乖戾)를 엄금(嚴禁)함.
4. 언동(言動)으로써 남의 척(慼)을 짓지 말며, 후의(厚意)로써 남의 호감(好感)을 얻을 것이요, 남이 나의 덕(德)을 모름을 괘의(掛意)치 말 것.
5. 일상(日常) 자신(自身)을 반성(反省)하여 과부족(過不足)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
< 연원 / 태극도 >
대순진리회는 기본적으로 연원을 증산계 종교의 교조인 증산 강일순(통칭 강증산)과 그 영적 제자로 자처한 정산 조철제에게서 찾는다.
태극도 자료를 따른다면, 조철제가 15세였던 1909년 음력 4월 28일(양력 6월 15일)에 꿈에서 증산이 나타나 "나는 구천상제요 너는 옥황상제라"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는 아직 증산이 사망하기 약 2개월 전으로 이때부터 조철제는 자신이야말로 증산의 참 후계자요 영적 제자이자 또한 옥황상제라고 자처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조철제의 주장일 뿐이다. 조철제는 강증산의 제자도 아니었고, 강증산을 생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대순진리회 전경에 따르면 강일순은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아올 테니 그때 전해주라면서 선돌부인에게 봉서를 맡겼다는 구절이 있다. 대순계 자료에서는 강일순의 예언대로 을미생 조철제가 1919년 정월 보름에 선돌부인을 찾아가 봉서를 받아갔다고 서술한다.
강증산이 사망한 이후에 부인들과 외동딸, 직계 제자들이 사분오열되어 각자 교단을 세우면서 서로 다툰다. 이 때 증산계 교단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성한 곳은 강증산의 제자 차경석이 세운 보천교였다. 그러나 보천교는 차경석 말기에 친일적 활동을 보이다가 조선총독부가 내린 유사종교해산령으로 해산되었다. 광복 이후 교단을 재건하였으나 지금은 명맥만 간신히 잇는 수준에 불과하다. 조철제도 이들 중 일부와 함께 1925년에 <무극도>(혹은 무극대도)를 세우고 증산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였다. 무극도는 1935년 일제의 유사종교해산령으로 보천교처럼 해산당하나, 해방 후에 조철제가 <태극도>라는 이름으로 재건한다.
< 대순진리회 탄생 >
1958년 조철제가 사망 전 태극도 전반의 운영을 박한경(朴漢慶, 1917-1996. 호는 우당牛堂)에게 공식적으로 승계하였으나, 조철제의 자식을 내세운 세력이 반발하여 태극도가 분열되었다. 물론 이 부분은 대순진리회와 태극도간 주장이 서로 다르다. 조철제의 아들 조영래를 중심으로 反박한경파가 결성되어 교권 장악을 가로막자, 박한경은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을 데리고 감천동 신앙촌에서 나와 1969년 서울 중곡동에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였다. 박한경은 태극도에서 사용한 도전(都典)이라는 직위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대순진리회 도전이 되었으며, 강증산에게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줄여서 구천상제)를 붙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편 태극도는 여전히 감천동에서 소규모 신앙 활동을 하는 중이다. 삼강오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